양산 시스템, 오디오애호가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특정 분야에 있어서 전문 브랜드와 유명한 브랜드를 구분 지어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다. 대량생산, 규격화, 회사의 규모 등으로 이를 판단하기도 하지만 출시되는 제품들의 컨셉트에 많이 지배 받는 경향이 적지 않다. 우리가 친근하게 접하는 오디오 분야에특히나 잘 들어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데논, 마란츠, 온쿄, 야마하, 소니, 그리고 파이오니아…… 우리에게는 전문적이기 보다는 유명한
브랜드로 인식되는 대표적인 일본 브랜드. 그리고 공통적으로는 하이파이 보다는 AV리시버나 사운드 바 등 보다 캐주얼 한 분야에서 그 인지도가 큰 브랜드에 다름이 없다.
하이파이 애호가들은 특히나 자신이 사용하는 오디오 제품이 각별하길 원한다. 다른 것들은 곁눈질하지 않고 오로지 오디오만 외길 인생으로 장인정신을 아낌없이 퍼붓는, 그런 제품 그런 브랜드가 보다 전문적이라고 생각한다. 포크레인 등의 중장비부터 오토바이, 심지어 피아노까지 만들어내는 브랜드가 만든 오디오, 혹은 DJ장비 등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만든 오디오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살짝 불쾌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사고를 지향하는 캐릭터라면 이러한 시각은 다소 접어둘 필요가 있다.
이른바 규모와 물량으로만 가능한 기술과 가격이란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이파이, 하이엔드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우리의 취미거리인 오디오, 이 제품들을 구성하고 있는 하드웨어의 원가는 사실 그렇게 비싸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완성된 사운드에 대한 가치는 이렇게 고기 근수 달 듯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같은 퀄리티라면 조금이라도 더 비싼 대가가 필요한 것이 오디오 아니던가? 비슷한
컨셉과 기능의 제품이라도 오디오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는 것은 이제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량생산시스템이 갖추어지기 어려운 오디오 브랜드들은 당연히 하드웨어에 대한 단가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량대비 단가라는 것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같은 크기/규격의 알루미늄 박스라고 할 지라도 100개 주문하는 것과 10000개 주문하는 것은 그 단가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 그리 어려운 개념은 아닐 것이다.
하이엔드 오디오같이 부품 하나하나에 각별함이 더해져야 하는 시스템에서는 이런 대량생산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적인 하이파이 시스템 수준에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해당 브랜드의 규모와 역량에 따라 같은 품질의 오디오제품이라도 소비자에게 떨어지는 가격대는 차이가 많이 날 수 밖에 없는 법.
소비자에게 남는 것은 결국 “가성비”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파이오니아의 올인원 오디오 제품이 바로 이런 컨셉에서 접근할 수 있는 “실용오디오”에 해당한다. NC-50 DAB이라고 명명된 이 한 덩어리짜리 오디오 제품은 분명 파이오니아라는 거대 공룡의 대량생산 시스템 혜택을 톡톡히 받고 나타난 물건으로 생각된다. 전형적인 양산형 샤시와 인터페이스, 심지어 포장까지도 일반 가전제품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가전양판점이나 마트에서
이 제품을 발견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특별하고 특화된 컨셉을 원하는 오디오파일에게는 썩 달갑지 않은 컨셉일 수도 있다. 하지만 특별하다는 것은 가격 또한 특별해 질 수 밖에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뭔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퍼포먼스가 아닌 “그래도 해두면 좋은 것”에 속하는 감성품질에 대해서는 지갑을 거리낌 없이 열기가 편하지는 않다.
파이오니아의 오디오 제품들은 실상 이러한 감성품질과는 큰 상관이 없는 컨셉을 유지해 왔다. 기능과 성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가면서 적절한 가격대에(여타 하이파이 브랜드의 동종 제품에 비해서는 월등히 저렴한 가격) 적절한 제품을 공급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입 소문 내용은 그 느낌이 다소 달랐다.
대기업(?)제품으로는 드물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N-50A네트워크 플레이어(그 후속인 N-70A 역시)라든지, 얼핏 보기에는 올인원 미니오디오에 불과한 XC-HM82 등은 하이파이 애호가들에게 오히려 음질로서 입 소문을 탄 제품들이다. 이 브랜드에서는 여타 일제 브랜드같이 AV리시버 등도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지만 정작 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은 하이파이 제품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HM82같은
경우, 100만원 초반 대에 쓸만한 앰프와 소스기기를 장만하고자 하는 하이파이 뉴비들에게 훌륭한 게이트 역할을 열어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어찌 보면 정작 파이오니아 당사자들만이 자사의 제품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이다.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출시된 N-50A등은 오히려 부가적으로 장착된 DAC음질이 화제가 되어 유명해졌다든지 하는 일화는 적어도 이 브랜드가 자사 제품의 마케팅 포인트를 잘 알고는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그런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만한 메리트가 또 없다. 이른바 가격대비 성능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생산자가 자신의 제품 가치를 잘 모르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여타 하이파이에만 매진하는 브랜드라면 자사 제품의 음질에 대해 보다 어필하려고 할 것이며,가격도 그에 맞게끔 올려 부를 것이다. (이는 회사의 기술력이나 원자재 비용과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파이오니아의 경우 자사가 가지고 있는 하이파이적 기본기와 실력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이 적은 뉘앙스를 풍긴다.제품 카탈로그를 보더라도 휘황찬란하게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여타 하이파이 브랜드 제품과는
차별화가 느껴지는 것이다. 대신 이 회사는 수치화 될 수 있는 펙트를 정확히 표기한다.
가치 매김은 결국, 또 입 소문을 탈 수밖에 없다.
▲ 현존하는 거의 모든 무선네트워크를
지원한다. 추후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구글캐스트 역시 지원할 예정이다.
NC-50 DAB는 전형적인 올인원 제품이다. CD플레이어와 네트워크 플레이어 등을 내장한 앰프. 요즘 제아무리 컨버전스가 유행한다고 해도 뭐든지 분리해내는 고전적인 하이파이 컨셉트와 비교한다면 다소 “덜 전문적인”기기의 양상에 다름없다. 하지만 이 제품에 전기를 허락하고 리모컨을 눌러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런 선입관이 여지없이 틀렸다는 것을 누구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소 투박한 경쟁 브랜드
제품의 인터페이스와는 다르게 유려하고 매끄럽게 흘러가는 3.5인치 풀 컬러 디스플레이라든지, 별다른 변수 없이 안정적으로 동작하는 플러그&플레이 시스템 등은 분명 그 품격이(심지어 기존의 파이오니아 제품하고 비교하더라도)다르다.
▲ 파이오니아에서 제공하는
"Pioneer Remote App"으로 구동이 가능하다. iOS앱, 안드로이드앱
NC-50 DAB는 우리가 현재 접할 수 있는 모든 오디오 소스를 총 망라하여 입력 받는다. 유무선 네트워크, 아날로그 튜너, 인터넷 라디오, 블루투스, 에어플레이, 네트워크 스트리밍 관련된 모든 것(TIDAL, Spotify 등), 그리고 외장하드 및 USB 입력 심지어 턴테이블을 위한 포노 입력단까지 말 그대로 모든 입력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서비스되지 않는 DAB도 공식적으로는 지원한다.) 이 모든 음원들은 파이오니아의 새로운 앰프 알고리즘인 Direct Energy HD을 통해 증폭되고 출력된다.
채널당 RMS 50W(4ohms)출력의 Direct Energy HD 시스템은, 그 기본 골자가 리니어리티와
안정된 댐핑에 근거하고 있다. 볼륨의 크기와 상관 없이 음 대역간 밸런스를 유지하고 인가되는 스피커 부하에 상관 없이(스피커의 임피던스 출렁임에 상관 없이) 안정된 댐핑펙터를 지킨다는 컨셉트이다. 흔한 이야기 같지만, 서두에 장문으로 열어놓은 양산 시스템의 의미가 더해지면 이는 더할 나위
없는 가성비를 열어주는 펙트이다.
다재다능은 일단 그렇다 치고……앰프 하나만 보자면.
규격화된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NC-50 DAB는 이 가격대에서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이야기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음질이라는 요소로 보자면 NC-50 DAB의 퍼포먼스는 여타 유럽제 인티앰프 중에서 200만원대 제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울리기 다소 까다로운 스피커들을 매칭해 봐도 그렇고 제법 모험이 될 만한 하드코어 대 편성 클래식 넘버를
걸어봐도 그러하다. 제품의 가격대,그리고 컨셉트를 고려하여 100만원 미만의 북셀프 스피커들로 청음을 해 보다가, 매칭 스피커 가격대가 점점 올라가는 경험을 하였다. 제품 테스트 초반에 테스트 했던 Acoustic Energy사의 저가형 북셀프 스피커들은 더 이상 매칭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NC-50 DAB와 북셀프 스피커 매칭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케이스는 바로 PMC DB1Gold 였다.
100만원 후반대의 이 북셀프 스피커는 앰프 성능을 판가름하는 아주 냉정한 잣대를 오디오파일에게 제공하던 터였다.즉 이 스피커에서 음장이라는 것이 제법 넓게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 앰프는 하이파이적 기본기는 보증할 수 있다는 뜻이다. NC-50 DAB같은 올인원 오디오 제품에서 DB1Gold를 이렇게까지 능동적으로 컨트롤하는 경우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규모가 크지 않은 앰프 시스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 스테이징의 표현 능력이나 음 대역간 밸런스, 그리고 적절한 댐핑의 여부이다. 우리가 흔히 구동력이라 부르는 요소는 이러한 모든 것들의 조화로움을 일컫는 개념이다. NC-50 DAB의 드라이빙 능력은 급기야 포칼의 Electra 1008Be 까지 도전하게 만들었으며 그 결과는 납득할 만 했다. 일부 일본 하이파이 제품 특유의 닫힌 듯한 느낌의 사운드는 없었다. (물론 그 이상의 스피커 매칭은 의미 없는 일이기에 포칼 스피커에서 NC-50 DAB라는 “앰프”의 테스트는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 NC-50 DAB가 상상 이상의 괴물이고 어떠한 스피커든지 다 두들겨 패주는 만능이라는 말은 분명 할 수 없는 과장이다. 하지만 파이오니아 출신의 이 단순하게 생긴 올인원 오디오는 “설마 이정도 스피커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분히 선방해 주었으며 그 판단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다지 좋지 않은 제품을 억지로 궤도에 끌어 올리고자 하는 수고를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NC-50 DAB의 스펙과 기능에 대해서는 본 글에서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았다. 제품 정보만 살펴보더라도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본 지면을 할애해서까지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다. 일단 이 제품의 뜻밖의 잠재력(Accidental Potential)을 캐치했다면 다재다능은 그저 추가적으로 따라오는 부록과도 같은 것. 그리고 그 부록마저도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이다.
파이오니아의 잠재력을 즐기라!
전작이라고 보기에는 그 격차가 제법 있는,동사의 HM82만 하더라도 미니오디오의 틀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미니오디오 치고는” 제법 한다는 뉘앙스가 사실 그 가격대에서 그리 서운한 것도 아니었다.다만 파이오니아의 양산 시스템이라는 것이 품질을 희생하여 대량화/규격화한다는 의미가 아님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그리고 NC-50 DAB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하이파이 컴포넌트로서의 파이오니아의 실력을 명확히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연결하는 스피커 대부분에서 기분 좋은 개방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더 표현할 것이 있고 좀 더 내려가거나 솟구칠 여지가 아쉬운 그런 한계가 없다는 의미이다. 없는 힘을 과장하여 억지로 끌어 올리는 힘겨움도 없으며 드라이빙의 여유는 분명 하이파이적이다. PMC, 다인오디오, KEF, B&W 등 200만원 언더의 인기 북셀프 스피커들을 가지고 있는 유저들이라면, 그리고 스피커를 장만하느라 앰프와 소스기기와 케이블 마련을 앞두고 가성비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파이오니아에서 출시한 이 기특한 제품 하나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운드를 만들 수 있음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적어도 “아쉬운 대로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S P E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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