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강단에서 그 모습을 볼 기회가 없지만, 김동길 교수의 ‘서양문화사’ 시간은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명 강의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인상적인 내용 중의 하나로서 인류가 다시 복귀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는데, 예를 들어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 같은 구조물은 재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작업으로 막대한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 일은 차치하고라도 물리적인 제작 이면에
담겨있는, 긴 시간에 걸쳐 탐구되고 투입된 원리들은 좀처럼 명쾌하게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복궁 재건을 위한 목재를 이제는 구할 수 없다든가, 복원 작업 후의 석굴암에 습기가 차는 현상도 여전히 미결
상태로 남아있고, 승정원 일기를 초벌 완역하는데 만도 앞으로 70년이 걸린다고 하는 등의 사례를 보면 대략의 유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인간이 하는 일에는 점점 불가능이란 없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지상 40킬로 높이에서 맨 몸으로 뛰어내리는가 하면 6천 킬로미터가
넘는 실크로드를 두 발로 걸어서 완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종종 과거의 위대한 원리들을 분명한 자료로 남기고 회귀시키는
작업들은 다양한 역사의 메커니즘 속에 단절되곤 하는 것 같다.
매킨토시의 MC275의 50주면 기념 모델을 보면서 뭉게뭉게 다소 거창한 감회가 피어 오르는 건, 혹시
나이가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 우려도 있지만, 제품의 핵심을 흩뜨리지 않고 포장박스의 내음조차 신선한 신제품으로 나타나주기 때문이다. 마치
50년 전의 세상과 소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순간은 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JBL의 파란 배플 스튜디오 시리즈 시청기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똑 같은 틀을 유지한 채 50년이란 시간에 걸쳐 계속 회귀되는 경우는 필자가 아는 한은 흔치 않다.
MC275만 해도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월간지 부록으로 나온 오디오 특집에 실려있는 오디오애호가의 거실 랙에서
본 모습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이 분은 여전히 형제 오디오애호가로 유명한 공일곤 회장의 시스템이었고, 마침 스피커도 JBL의
4343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뻑스럽게도, 필자의 기억력 또한 경이롭지 않은가… 여하튼, 당시에 잘해야 마란츠의 리시버가 최고라고 알고 있던
필자의 눈에 MC275는 가히 경이로운 대상이었다. 대칭의 구조를 벗어나서 측면을 미끄럼대처럼 테이퍼를 주고 깎아 내려간 파격적인
디자인이라든가, 진공관을 적나라하게 전면에 드러내고 그 뒤를 병풍처럼 둘러싼 세 개의 검은 색 트랜스 배치 등, 이건 과연 어떤 소리가 나는
물건일까… 원리를 전혀 모르는 10대 초반 필자의 호기심은 견디기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본 제품은 작년에 발표된 MC275의 발매 50주년 기념 모델이다. 매킨토시가 5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동일한 원형의 제품을 유지하면서 업그레이드만을 할 수 있었던 건 결정적으로 원형 디자인의 우수성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단편적으로
‘앞서갔다’고만 할 수 없는 건, 50년 전에도 이 디자인이 어울렸었고, 현재에도 여전히 신선하고도 명품적인 품위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약 8년
전쯤 마침 필자가 편집장을 맡은 월간지의 재창간 작업 중에 MC275의 골드버전이 발매된다 해서 재고의 여지 없이 표지모델로 선정한 바 있다.
이 제품이 골드 플레이트로 변경되어 발매된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전환의 의미로 생각했었지만, 2004년 골드 모델은 이미 5번째 개량
버전이었으며 따라서 이번 50주년 기념 제품은 6번째 개량버전이 된다.
2004년 골드 버전에서 이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면, 골드 플레이트 처리한 섀시, 무광
도색한 특유의 대형 캔 트랜스, B전압 상향 조정 등이었는데, 본 50주년 버전에서는 좀더 큰 변화들이 생겨나 있다. 특히 인터페이스에서
대대적인 변경이 있었는데, MC275 고유의 좌측 경사면 전체를 할당해서 바인딩 포스트를 큼지막하게 배치시켰다. 이에 따라 밸런스 단자 및
바이어스 스위치 등을 패널 아래쪽으로 이동시켰다. 필자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 부분의 변경을 놓고 환호할 오디오파일들은 매우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MC275의 사운드에 매료되어 들여놓으려다가도 정작 갈등을 빚는 부분이 바로 볼트 조임식의 좁은 골목길 같은
케이블 가이드 홈의 한계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공을 들인 최신예 케이블들의 터미네이션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야 했고, 터미네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케이블을 직접 꼬아서 감는다 하더라도 그 굵기 자체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구형 케이블들을 사용하거나, 굳이 최근의 케이블을 사용하려면
석연치 않은 어댑터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 경우에도 왜소한 케이블 마운트 부분이 항상 불안해 보인다는 단점은 끊임없이 고민을 낳게 만들곤
했다. 정확한 이유가 파악 안 되는 채로 다소 고집스럽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고 고수되던 이 부분이 마치 신세계처럼 변경되었다. 말굽단자 및
바나나단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역시 금빛으로 도금 처리된 큼직한 4쌍의 바인딩포스트는 보기만 해도 시원시원하다.
외형적으로 이렇게 큰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 사운드에 영향을 줄만한 변화는 본 제품의 좀더 핵심에 가까울
정도로 거의 다른 제품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제작사의 설명에 따르면 출력트랜스에 새롭게 적용된 권선방식으로 대역이 넓어졌고 음질의 손실
없이 게인단이 최적화되었다. 또한 출력트랜스의 스피커단자 결선에서부터 직접 NFB를 걸리게 해서 댐핑팩터를 향상시켰다. 그리고 플레이트에 걸리는
B전압을 485볼트에서 720볼트로 다시 한 번 상향 조정해서 초단관인 12AT7에 선형성(linearity)을 더했다. 새로운 회로설계를
통해서 초단에서 발생하는 열잡음을 감쇄시켰다. 골드버전에서 적용되었듯이, 초단의 베이스 쪽 녹색LED는 시각적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인디케이터
역할을 해서 붉은 색으로 변하면 교체를 하거나 일단 작동을 멈춰야 한다. 또한 진공관스럽지 않은 30분간 입력신호가 없으면 대기모드로
전환된다.
선입관으로 대하는 일반적인 매킨토시의 아킬레스건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주여 줄
것이다. 시청을 하는 동안, 가능하다면 최소한 2004년 버전과는 비교시청을 해봤으면 싶을 정도로 궁금증이 생겨났다. 필자가 아는 MC275의
소리에서 많은 변화가 생겨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주로 바람직한 쪽으로의 변화가 되겠는데, 필자가 기존 MC275 고유의 장점을 놓고도
밀레니엄 이후 쏟아지는 그리 비싸지 않은 하이엔드 지향 제품들과 섞어놓고 선뜻 오디오파일들에게 추천하기 곤란했던 바로 그 이유들이다. 예컨대
스피커를 단정하게 제어하지 못한다던가 고역 끝이 선명하지 못한 부분들이 감지되거나 하는 점들이었다. 완벽하다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본 50주년
버전에서는 최근의 앰프들과 동일 부분을 놓고 우열을 논할 수 있는 정도의 변화가 생겨나 있다. 이 내영 이외의 기타 내용들을 놓고 취사선택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기존의 MC275만 해도 그 이외의 부문에서는 아직 호적에서 잉크가 마르지 않은 앰프들이 언감생심 넘볼 수
없는 관록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MC275 50주년 버전의 사운드는 시종 진지하고 맑다. 무엇보다 강건하고 중후한 스타일은 역시 변치
않는 MC275의 본령과도 같은 영역으로서 본 50주년 버전에서도 여전하다. 매칭 시청한 유사성향의 ATC50TSL은 마치 땀이 나는 것을 잊고
연기에 몰입해 있는 페어스케이팅 파트너처럼 어느 곡에서나 혼신의 열연을 펼쳐주었다. 이에 더해서 본 제품의 최대 패치효과로서 고역과 저역 전역에
걸쳐 향상된 해상도는 재생장르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해주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오픈된 느낌으로 투명하게 확산되는 고역 끝의 울림과 공간감,
그리고 마이크로 다이나믹스의 세부묘사와 기민한 움직임 등은 이전에는 MC275의 장기가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시청을
거듭할수록 진공관 특유의 하모닉스가 마스킹의 불쾌함이나 답답함이 없이 피어나는 느낌은 다시 한 번 MC275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백건우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함머 클라비어’ 도입부의 박두해오는 연속음은 두터우면서도 기본적으로 매우
사실적이며, 그 뒤를 서포트하는 핵이 깊고 파워풀한 느낌은 청각적으로 만족감을 준다. 짧은 음표간의 이동에서도 다이나믹스가 거침 없이 분명하고
약음에서의 마이크로 다이나믹스는 밝고 선명하다. 박진감 속에서도 세밀한 손 동작이 감지되는 세부묘사력이 돋보이는 연주이다.
마이스키, 아르헤리치 커플의 ‘아르페지오네’는 특유의 질감과 더불어 향상된 투명도가 기여하는 바가 큰
곡이다. 중역에서의 촘촘한 질감의 뉘앙스와 해상도 등이 높은 대역으로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울림은 대단히 서정적이다. 실제 연주에서의 느낌과
매우 유사한 현의 움직임과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곡에서도 고전 진공관에 비해 고역이 확실히 열려 있는 공기감의 느낌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매력적이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대단히 사실적이다.
정명훈 지휘의 ‘미사 탱고’는 명암의 대비를 분명히 해준다. 무대 위의 조명이 미세하게 변화하며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듯한 상황을 잘 그려낸다. 진공관에서 열기를 느낀다는 건 단지 심리적인 효과가 아닌 것이 바로 이런 그라데이션과 마이크로
다이나믹스의 미세한 포착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코러스가 시작되면서 어떤 밀집된 온도감이 상승해오는데, 어둡고 답답하면 몇 초 이상
감상하기 어려운 이 곡을 두 악장이 다 끝나도록 듣고 있었다. 이 복잡한 다성, 복합 연주를 손에 땀을 쥐도록 변화무쌍한 연주를 손색없이 잘
들려주었다.
욕심과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좀더 큰 편성의 곡으로 가보았다. 게르기에프가 지휘하는 ‘불새’처럼
스펙트럼이 넓은 곡에서는 운동의 반경이 광활하다는 느낌이 강하지는 않지만, 입체감의 표현이 정교하고 다이나믹스도 박진감 넘치게 잘 들려주었다.
세밀하고 섬세하며 나른한 분위기와 역동적인 분위기를 오가며 변화무쌍한 연출을 하는 모습은 여전히 일품이다.
폴 아웃 보이의 ‘Thanks for the Memory’에서의 바람 가득 넣은 농구공 같은 탄력 있는
베이스 드럼은 MC275 고유 영역중의 하나이다. 스피커 사이즈와 무관하게 시청자를 압도하는 리드미컬한 드럼 비트는 과장이나 과도한 울림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위력적이다. 무대의 빈 곳 묘사도 분명하고 열기감도 잘 전해준다. U2의 ‘With Or Without You’ 같은
고전도 본 제품과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찰진 느낌의 보컬과 베이스의 운행 등이 가득 채워주는 공간의 울림은 매킨토시 고유 영역 중의
하나이다.
마침 앞서 시청한 다즐의 플래그쉽 NHB458과 ATC150TSL의 영향으로 인해 하이파이클럽 대표님의
우려가 있었다. 물론, 다즐+ATC150 조합의 퍼포먼스는 분명한 우위를 갖고 차별화를 두고 있다. 다즐+ATC150에 연이어 시청을 하자
대역, 다이나믹스, 스테이징 등이 다소 축소되어 들리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그 범위 안에서 정밀하게 약동하고 묘사되는 무대 위의 상황은 서로
우위를 견주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대역이 축소되어 있지만, 저역의 스케일은 150의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수준이다. 다즐 만큼의
광활한 스펙트럼은 아니지만 절대적 기준에서의 음악적 표현을 놓고서는 아쉬움을 호소할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녹음에서의 리마스터링이 그러하다. 원래 녹음을 한, 그래서 그 원리와 컨셉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에
의해서 되지 않으면 단순 해상도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가 많다. 50년의 세월에 걸친 유지와 변화, 이 두 가지를 놓고 MC275
50주년 버전의 제작자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본 제품의 장점과 단점을 어느 선까지 수용하고 채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검토를
거쳤으리라 보인다. 분명한 건, 이 제품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해 변경이 지휘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어떤 케이블도
사용할 수 있고, 가리는 장르가 거의 없어졌다. 지금까지 발매된 최고의 MC275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신구를
막론하고 최고의 앰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Specification |
정격 출력 |
Stereo 75W+75W(16/8/4Ω), Mono Parallel 150W(8/4/2Ω) |
주파수 응답 |
+0, -0.5dB from 20Hz to 20KHz +0, -3.0dB from 10Hz to 70KHz |
SN비 |
100dB(A-Weighted) |
THD |
0.5 % |
정격 출력 대역폭 |
20Hz to 20,000 Hz |
중 량 |
30.5k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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